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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칼럼

제목

사담 후세인 이해하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11.03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852
내용
사담 후세인(1937- )

도시 자체가 고대박물관인 바그다드가 폭격으로 파괴되고 있다. 파괴하는 미국이 나쁜 것인 지, 폭격을 불러들이고 있는 고집이 나쁜 것인지가 혼란스럽다. 다만 성전을 위하여 귀한 생명을 바쳐야 하는 자살특공대와 민간인을 방패로, 결과가 비참한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대통령이 양질의 지도자인 지 의문이 든다. 그 대통령을 인생역정과 정신역동을 살피면서 이해하여 보고자 한다.

지난 20년 간 대통령으로 재임하며 세 번이나 전쟁을 일으킨 사담 후세인은 이라크 국민들에게는 위대한 지도자이다. 문맹을 퇴치한 공로로 유네스코상을 수상한 대통령이다. 그러나 외부에서 보는 그에 대한 평가는 "그가 자신의 삶을 이라크 국민들과 함께 하는 한, 이라크 국민들에게는 지옥이 연장될 뿐이다. 자신의 개성을 이라크에 심어나가는데 있어서, 잔인한 테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 이다.

성장배경을 보면, 1937년에 바그다드 북쪽 1백 마일에 위치한 작은 촌락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환경은 폭력으로 둘러싸인 불행이었다. 부친은 출생 전에 산적들에게 피살당했고, 유복자인 사담을 어머니는 오빠집에서 분만한다. 모친의 의붓오빠가 그를 사담(싸움장이라는 뜻)이라고 작명했다. 아직 어렸을 때 모친은 기혼남자와의 재혼을 결정하는데, 이 사건은 그에게 생애 최초의 불행한 일화가 된다. 계부는 그에게 학교에 가지말고 농부나 양치기로 일하도록 강요한 잔인한 성품의 무식꾼이었다.

계부가 그를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말도 있으나 그가 권력을 잡은 후 계부를 죽였기 때문에 확인되지는 않았다. 그의 어린 시절의 비화를 말하는 사람은 모두 살해되었다. 열살 때 그는 권총 한 자루를 가지고 아저씨 집으로 살러간다. 아저씨는 친나치조직에 가입된 혐의로, 군에서 해임되었는데 사담의 일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군인제복의 아저씨 사진에 매료되어 나치주의에 대한 존경심을 물려받고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민족주의운동 사상인 바트당에 집착하게 된다. 1950년대 그의 중학교 시절은 민족주의 교사들과 학생들로 가득차 있었고 나세르의 열렬한 지지자들이었다.

그의 나이 약관 16세에 첫 번째 살인을 한다. 20세에 또 다른 살인을 한다.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실업자로 있던 중 암살부대에 가입을 통고 받는다. 이후 카이로에 망명하여 외국생활을 시작한다. 이때 이집트정부는 그를 달래는 음모로 사촌인 사지다(후에 결혼)와 결합시킨다. 카이로에서 대학에 입학했으나 어떤 시험도 치른 바 없고 대학기록부에도 없다.

암살자로 귀국하여 뒤에 바그다드대학에서 위협적 방식으로 학위를 수여 받는다. 이후 그는 테러와 암살이 주임무인 특별부대를 책임지고 심문과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높이게 된다. 그는 새로운 고문기구들을 창안해 낸다. 그의 바트당이 실권하자 그는 지하로 들어가 나치SS의 모방인 「지하즈하닌」 조직을 이끌면서 암살을 수행한다. 그는 암살을 일상적으로 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세인에게는 대중의 앞에서 비상한 언변으로 민중을 휘어잡는 천부적 능력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잔인했다. 그가 제2인자가 된 후, 또 대통령이 된 이후 줄곧 그에게 조금이라도 반대하는 사람은 즉각 처형해버렸다. 다른 어떤 사람이 국민에 의하여 「영웅」으로 지목되면 그 때마다 은밀한 방법으로 제거되었다.

1979년 그가 무적의 대통령이 되자 모든 어린이에게는 「초인적 지도자 민중의 아버지」로 교육되는 개인숭배를 시작하였다. 우표, 손목시계, 티셔츠 위에 그의 사진이 그려졌다. 바그다드 공항은 사담 국제공항이 되었고 그의 생일은 공휴일이 되었다. 그는 바그다드 출신의 강력한 정치가가 통치하는 하나의 통일된 회교제국의 탄생을 꿈꾸고 있었고 그의 족보는 다시 창조되었다.

그는 매우 복합적인 개성을 지닌 인물, 즉 공포로 통치하는 영웅, 국가의 근엄한 수호자, 지도자, 건축가, 경제학자, 완전한 정치가, 협상가, 성공적인 행정가 등의 복합적 면들을 갖고 있다. 그의 정신역동에서 주요한 면은 정체성의 산만성이다. 사춘기소년의 미성숙 중에 동일시 인물의 방황과 같은 현상인데, 정치가로서의 면과는 달리 실제생활에서는 우유부단하고 소심하며 항시 정체성의 혼동을 보인다는 점이다. 동일시 대상의 계속되는 변화를 추구한다. 정치적 변화가 있을 때마다 그 상황에 걸맞는 고대의 역사적 인물들을 찾아서 상징화하고 동일시하는 노력을 보인다는 것이다.

정신분석가 제럴 포스트 교수는 이렇게 진단하였다. "그가 보여주는 정치적 모습을 광기라고 할 수는 없다. 그는 나르시스트, 곧 자애적(narcissistic) 성격장애자이다. 그의 정치 과거력이 보여 주듯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서는 누구의 충고나 개입이 불필요하다.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오로지 아첨꾼일 뿐이다."
각료회의에서 보건장관이 미지근한 찬성을 보였을 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죽음이었다. 자애적 성격장애자는 남들을 무섭게 이용하고 짓밟고 일어서며 이용이 끝나면 쓰레기처럼 버린다. 조기발육과정의 모성애적 사랑의 결여 때문이다. 최초의 대상관계, 곧 모자관계에서 원하는 사랑(음식, 배설 그리고 따뜻한 포옹)이 충족되고 타인의 존재를 수용, 인지하게 되면, 차츰 외부세계에의 친밀성이 증가된다. 그러나 요구가 좌절되면 애타적 발달과정이 중단되고 원초적 자애경향이 강화된다. 타인은 나를 위한 도구이거나 착취적 대상으로 존재할 뿐이다.

자애자가 만족의 한계를 끝없이 높여 가듯이, "후세인은 전쟁의 실패 이후에도 그의 정신병리를 부정하고 계속 같은 추구에 집착한다면, 이라크 제국의 미래는 너무나 불행할 것이다." 10년 전에 예견한 독일 디벨트지의 예언이 적중하고 있다. 하루 빨리 전쟁이 끝나고 이라크에 평화가 정착되기를 염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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