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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칼럼

제목

위대한 정신병 - 김 삿 갓(1806-1863)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11.02
첨부파일0
추천수
1
조회수
3179
내용
죽장에 삿갓쓰고 방랑 삼천리」를 살고간 풍류시인 김병연은 이조(李朝) 순조 7년에, 아버지 김안근과 어머니 함안이씨의 둘째 아들로 경기도 양주군에서 탄생하였다. 그의 집안은 권세가문인 장동 김(金)씨였다. 원래는 안동 김씨이나 당시 조정실권을 쥐고 있던 안동 김씨 세도가들이 장동(현재의 효자동)에 살고 있었으므로 장동김씨로 불리었다. 그는 5세까지 서울에서 세도가문의 자제로 성장한다. 그러나 조부(祖父) 김익순이 참형을 당하고 아버지는 울화병으로 석 달만에 타계한다. 어머니는 아들 삼형제를 데리고 삼족의 멸을 피하여 황해도 곡산 경기도 광주, 가평, 평창, 여주등지로 숨어 살다가 강원도 영월산골에 정착하게 된다.

그의 인생에 대변혁이 일어나는 계기는 나이 스물에 영월고을의 백일장에서 장우너(壯元)을 하면서 시작된다. 홍경래의 난(亂)때 반군의 술과 여인 계락에 넘어가 만취상태에서 항복한 부사(副使) 김익순을 매도하는 명문(名文)을 써서 장원이 되나, 집에 와서 기쁘게 보고하는 그를 어머니는 석고대죄(席藁待罪)를 명(命)한다. 김익순이 그 자신의 할아버지였기 때문에 그는 손자로서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 때문이다.

죽일놈이라고 욕을 퍼부은 김익순이 자기의 할아버지임을 안 그는 몇날 몇일 웅크리고 누워 죽을 결심을 한다. 그는 하늘이 부끄러워 삿갓을 쓰고 방랑으로 불효(不孝)와 한(恨)을 푸는 일생을 결심한다.

정신의학적으로 보면 그의 창작세계와 성격(性格), 그의 시작(詩作)속에서 흐르는 강한 한(恨), 염세적이고 비아냥거리는 태도, 특히 성적표현(性的表現) 등은 매우 흥미로운 면을 보인다.

일생의 패턴을 결정(決定)짓는 초기인생(初期人生)은 다복(多福)해 보인다. 그러나 주체성을 형성해가는 시기(時期)는 그렇지 못하다. 그 자신이 표현한 人生은 이러하다.

"형태가 곤궁하여 울타리에 뿔이 걸린 양과 같구나"

이조의 계급사회에서 꼼짝할 수 없는 현실은 그 가슴을 얼마나 옥죄었을까. 신대륙이라도 건널 수 있는 세월이었다면 방랑의 시인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꼬운 상대를 대담한 욕설시(詩)로 난도질하는 재치와 숨은 공격성은 그의 한(恨)을 푸는 스트레스 해결의 방안이었을 것이다. 방랑 36년 간 3백여 수 중 절반 가량이 성적묘사를 통한 화풀이인 것은 퍽 인상적이다.

음주벽(관대한 음주문화와 후한 술인심으로 보아서 중독이 되었을 가능성은 있다) 장원 당시의 충격으로 심한 우울상태로 보아 정신병리적 가능성은 짙다고 본다. 심한 우울상태에서 「헛것」도 보고 「헛소리」도 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당시의 세도가에 속하는 유생(儒生)과 중(僧)을 욕한 익살묘사가 그중 백미다

僧首團團汗馬囊 승수는 단단한 바람이요
儒頭尖尖坐狗腎 유두는 첨첨좌구신이요
聲令銅令 零銅鼎 성령동령 영동령하고
目若黑椒落 白粥 목약흑초락 백죽이라.
( 둥글둥글한 중의 머리는 땀찬 말불알이요, 뽀족뽀족한 선비대가리는 앉은 개불알이요, 목소리는 구리방울을 구리솥에 굴리듯 요란하고, 눈깔은 검은 후추알이 흰죽에 떨어진 듯 흉하구나.)

흔한 알콜중독자의 병리 가운데 술을 안 먹은 때는 무골호인(無骨好人)이요, 취중(醉中)에는 정신병적 난폭성을 보임은 바로 억압된 공격성과 적개심의 표현이다. 그의 시대적 가문(家門)의 한계와 자신의 인생을 망친 선조에 대한 공격성과 불효, 죄책감 등이 혼합된 그의 심리가 술에 취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을 것이다. 소설가 정비석(鄭飛石)씨가 엮은 6권의 「풍류소설(風流小說) 김삿갓」은 흥미로운 공감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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