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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칼럼

제목

골프와 인생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11.03
첨부파일0
추천수
5
조회수
4516
내용
백코치의 추억

예과 일학년에 입학하고 얼마후 백코치라는 별명을 얻은 친구가 있었다. 그는 친구들과 어울려서 당구를 칠 때, 훈수를 잘 하였는데 그 친구의 실력이 훈수를 받는 친구보다 하수였다. 그는 백점실력이었고 받은 친구는 이백이었으니 처음엔 더 잘 치는줄 알고 있다가 결국에는 비아냥거리는 뜻이 담긴 백코치라는 별명을 붙여준 것이다. 백코치는 성격이 좀 덜렁거리며 유쾌한 친구였고 지금은 의과대학의 고명한 교수님이다. 지금 내가 휠드에 나간다면 실력이 백점근처인 주제일터인즉, 골프에 관한 얘기를 하려니까 그 친구가 생각 난다. 다만 그 친구가 철없이 훈수를 하던 일이나 나의 경우나 악의없이 인생을 잠시 경쾌하게 얘기하고져 하는 그런 마음이라는 걸 밝혀두어야 오해가 없을 일이다.

잠자리에 누우면 낮에 거닐었던 골프장의 아름다운 정경이 훤히 떠오르고 힘찬 티샷에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는 백구의 포물선이 눈앞에 아련하다. 청춘 시절에 당구를 처음 배울 때 당구공이 허공에 굴러다니는 환상을 보는 것이나 진배가 없다. 첫 홀에서부터 순서대로 필림이 돌아가다보니 밤은 깊어간다. 흥분감으로 잠을 설친다. 이런 불면의 밤은 골퍼 누구나가 겪어보는 밤이리.

어느날 나는 그 즐거운 골프를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 "회원의 날"이 되면 새벽잠을 설치고 컴컴한 새벽길을 달려간다. 줄을 서고 키를 받아들고도 한두시간을 목욕실의 바닥에서 잠들다가 부시시한 얼굴로 아직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여명에 샷을 날리는 일요아침은 결코 상쾌한 시작이 아니었다. 나른한 오전 라운딩을 마치고 일찍 오후에 돌아와서 휴일의 여가를 보내고 있자니, 이건 너무 시간소모가 많은 운동이라는 부담감이 온다. 그렇다고 힘 좋은 사람들처럼 좋은 시간에 부킹을 하는 처지도 아닌 팔자이니 차라리 그만두자고 생각했다. 회원권도 처분해 버렸다.

친선행사라도 있어 할 수 없이 녹쓸은 솜씨를 닦고 있자면 이놈의 골프가 도대체 무슨 운동이관대 이토록 매력이 있어, 금단증상이 심한 것인가 의문이 들어 곰곰이 따져보자는 생각에 글을 쓴다.


골프의 역사

우리나라의 전체 골프장수는 150여개로 일본의 3분의 일이고 미국의 하와이주 전체의 숫자와 비슷하다(인구 일만명당 골프장수: 한국 0.03, 일본 0.18, 미국 0.58개). 이 나라의 문화가 미국닮기를 계속하는 가운데, 골프를 하는 인구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사치스런 운동이 아니라고 이 방면의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IMF 이후에 단지 14%의 국민이 살림이 좋아졌고 54%는 예전보다 악화되었다고 한다. 예전에도 국민의 상위 10%권에서 즐기는 운동이 골프였으니 골프계는 지금이 당연히 전보다 호황을 누리게 되었을 것이 자명하다. 평일의 골프장이 대만원 사례인걸 보면 증명이 된다. IMF 이전이라 하더라도 골프는 서민들에게는 거리가 멀었고 다만 골프웨어를 입어보는 수준에서 만족하며 살고 있다. 다만 심리적 저항감은 박세리 열풍의 아메리칸드림이 실감케 되므로써 상당히 누구러진 것 같다.

나도 골프를 시작한 것은 십수년전. 현재는 가끔 끌려가듯이 보국대 골프를 하고 있으니, 실력은 시원치 않아서 핸디캡 30을 맴돈다. 한 때는 80대 타수를 쳐보기도 한 추억이 있으나 나에게 점수는 대수가 아니었다.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치는 친구를 보면 부럽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잘은 못하지만 이것이 무척이나 재미있는 운동임을 실감했다. 누가 어떻게 이토록 재미난 묘미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골프는 인생과 닮은 점이 많아서 마치 인생을 상징적으로 디자인해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골프의 역사적 기원은 분명치가 않다. 몇가지 사실들로 골프의 기원을 추론한다. 로마의 씨저가 스코트랜드를 정복하였을 때, 병사들이 구부러진 막대기로 새털공을 치며 노는 것을 보고 스코트랜드 사람들이 즐기게 되었다는 설이 있고, 네델란드의 코르프라는 놀이에서 발전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스콧트렌드의 목동들이 막대기로 들토끼의 집구멍에 넣는 재미가 기원이라는 설도 있다. 1296년 네델란드 런넨이라는 도시에서 교회의 뒤뜰에 4홀규모의 경기장을 마련했다는 기록이 있다. 1991년에 한 중국학자는 골프의 기원이 중국이라는 설을 제안하였고, 명대의 그림인 "선종행락"에 황제가 골프와 유사한 경기를 즐기는 장면이 있다고 하였다.

들판에서 양들이 밟고 지나가 편편해진 곳이 페어웨이(fairway)가 되었고 양들이 뜯어먹어서 고라진 자리가 퍼팅그린(putting green)이 되었다고 한다. 페어웨이란 용어는 원래 항해용어로 "바다의 안전한 길"이라는 뜻이다. 즉 바위사이의 안전한 항로이니 이는 안전한 인생과 비유될 수 있다. 영국과 네델란드 사이의 항해와 골프의 역사는 깊은 관계가 있어서 이 용어가 도입된 것으로 생각된다.

피의 혁명으로 유명한 메리여왕이 시종을 거느리고 골프를 즐겼다는데 이 때 사관후보생도(military cadet)가 시중을 들어서 오늘날의 캐디란 말이 나온다. 15-16세기 영국에서는 서민들이 이 놀이를 좋아해서 생산성이 떨어지자 왕실은 국민들에게 골프금지령을 내리기도 하였다. 후일에 골프는 특권층의 경기로 전환된다. 기원과 발상지가 어떻든간에 금지령이 내릴 정도로 이 운동이 무지하게 재미있는 놀이였음이 분명하다. 경기운영의 역사가 쌓이면서 점차 규정이 까다러워지고 경기상대를 존중하는 신사적인 운동으로 성장해 오게 된다.

우리나라 골프의 역사도 백년전에 시작된다. 1890년 왕실고문단 영국인들이 원산바닷가에 6홀의 코스를 마련한 것이 시초로, 1919년에는 미국인이 효창공원에 9
홀을 만들었고, 십년후 1929년에 영친왕 이 은공이 현재의 서울어린이대공원자리에 18홀을 만든다. 초창기부터 이 나라의 골프는 귀족의 운동이었다. 우리나라 연명춘선수가 일본의 골프계를 석권한건 1949년, 그후 반세기가 지나서 박세리가 세계무대를 제패한다. 일본의 현재 골프성장을 보면 우리나라의 성장은 추세로 보아서 머지 않아 현재의 세배 이상은 성장할 전망이라 한다. 내가 골프를 처음 시작하던 십수년전만 해도 인도어 연습장이 드물었고, 타석마다 아가씨가 앉아서 공을 놓아주어 사람을 다칠까봐 걱정을 하면서 스윙을 하였다. 오늘날은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 시설은 첨단적이 되었다.

골프와 인생

휠드에 섰던 첫 날, 긴장으로 얼어붙은 어깨는 첫 스윙을 멋지게도 슬라이스를 구사하여 소나무 숲속으로 백구를 날려버렸다. "드라이버는 쑈, 퍼팅은 돈!" 열받는 나에게 친구는 가르침인지 야유인지 모를 소리를 했다. 한참 세월이 흘러도 점수는 줄지 않았고 소질이 없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한 달도 못채운 인도어 연습후에 머리를 얹었고 휠드를 누비니 당연지사였다. 샷은 시원해도 점수는 안 줄어들었다. 숏풀레이가 서툰 것이었다. 그린근처에만 가면 냉온탕을 하면서 주눅이 들어 헤맸다.

흔히 초보골퍼일수록 멋을 중시한다. 골프클럽부터 그럴듯해야 하고 프로폼같다는 소리도 듣고 싶다. 철없는 청소년들이 멋진 하이칼라 직업을 갖고 싶은 것이나 진배 없다. 인생을 멋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 돈이나 좀 있고, 어느 문필가의 글 속에서 보듯이 "생활은 하인에게 시키고..." 멋만으로 즐기는 인생. 있을 수는 있어도 보통 복받은 사람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흔히 설거지라고 표현하는 숏플레이를 잘하는 노익장들을 보면 폼은 각양각색이다. 그들의 스윙폼은 그야말로 제멋대로이고 그러나 임팩트(공을 때림)는 정확하여 백구를 잘도 날린다. 퍼팅을 잘해서 성적도 좋다. 폼이야 어쨋던 실속위주의 인생이다. 그래도 인생은 멋이 있어야지 한다면, 그는 피나는 연습과 코치의 지도를 받아 멋진 샷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좋은 스승을 만나면 좋은 경기를, 좋은 인생을 사는 것과 같다. 요지음 젊은 층들의 스윙폼은 할배그룹과 달라졌음을 본다. 우선 인도어연습을 여러달 계속하는 습성들이 생겼다. 이것이 세대의 가치관이 변화되어 가는 모습인 것 같다. 멋도 실속도 가미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을 잘 살아가려면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얻고 진학하여야 하듯이 연습장에서 기본기가 잘된 사람은 드라이버, 롱아이언, 훼어웨이 우드를 잘 다루어서 멋진 샷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오랜 실전을 겪지 않으면 그린 안팎에서의 숏플레이가 쉽지 않다. 장년층에는 엉성한 폼으로도 좋은 스코아를 내는 골퍼가 많은 것은 휠드현장에서 경력이 쌓인 결과로 적지 않은 돈과 세월을 소모한 후에 얻어진 결과이다. 예전에는 아파트 한 채를 날려야 가능한 일이었다.

짧은 경력으로 좋은 점수를 내는 사람은 피나는 연습벌레이다. 이것이 인생의 이치와 꼭 닮았다. 성실은 인생 최고의 미덕이 아니던가. 골프를 치다보면 인간성이 들어난다. 샷이 빗나가면 옆의 캐디에게 공연한 신경질을 내는 사람, 퍼팅이 안들어갔다고 퍼터를 부러뜨리는 신경질, 휠드매너와 연습방식, 자유러운 스윙폼 등 다양한 모습에서 골퍼의 성격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상한 규칙

드라이버 장쾌한 250미터 한 타도 일센티의 퍼팅도, 같은 한 점으로 계산되는 건 골퍼의 입장에서는 이상한 규칙이다. 억울하다. 멋진 샷은 두 점이 되고 짧은 퍼팅은 한 점이라면 좋겠건마는 규칙이 안 그렇다. 드라이버를 멋지게 치고 그린 가까이 와서는 조심스럽게 아프로치를 하는데 털썩 뒷땅을 때리고 나면 어-휴 이런 참담한 기분을 어이할꼬. 어떤 캐디가 수년간의 골프장 경험을 토대로 책을 냈는데, "골프는 정말 실수를 안해야 되는 운동이다" 라는게 그녀의 결론이었다. 인생도 이와 같지 아니한가, 실수 안하고 사는 사람, 정말 잘 사는 인생이리니. 드라이버 장타도 일쎈티의 퍼팅도, 털썩은 같은 한타라.

왜 이토록 극단적인 공평성을 고집한 것일까? 내 직업이 의사이다보니 이와 유사한 현상을 의료계에서 관찰한다. 노련한 외과의사가 맹장수술을 한 경우 수술시간도 마취시간도 짧고 환자도 그만큼 덕을 본 것이니 치료비가 더 비싸야 옳은데 그렇지가 않다. 서투른 의사가 긴 시간을 수술하고 긴 마취시간을 했을 때, 치료비는 더 비싸다. 보험급여시스템이 그러하다. 소위 진보된 시스템의 결과의 모순이다. 대학병원의 교수님이 병원에 근무할 때는 특진비를 따로 받는데, 그가 개원의가 된다면 그 순간부터 경력은 무관하게 햇병아리 의사와 같은 진료비를 받아야 한다. 경륜이 있는 의사는 억울하다. 새파란 젊은 의사는 좋을 것이다. 인생이란 긴 안목에서 보면, 젊은이가 후일에 늙은이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니 기회균등의 법칙일까. 여하간에 규칙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순종이 미덕인 것을. 그러나 여기에도 역설은 있다. 실수 안하는 인생은 편하기는 해도 살맛이 있을는지. 골프에 실수가 없다면, 최고수의 프로선수 경우일진대 그들의 수준에서 골프는 이미 재미가 아니질 않는가. 막대한 돈이 걸린 한 타의 경기는 놀이라기 보다는 코피터지는 혈전이다. 인생 또한 적당한 실수 속에서 재미가 있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골프는 아마츄어에 게는 재미있는 놀이여야 한다.

인위적 규칙, 과학 그리고 정신

왜 골프는 18홀로 정해졌을까? 어떤 친구의 말은 이렇다. 스코트랜드의 싸늘한 날씨에 라운드를 하다보면 휴대용 스카치위스키 한병이 병뚜껑으로 홀짝홀짝 한 홀마다 마시면 18홀에서 바닥이 난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말인데 사실은 아니다. 전영국챔피언대회가 10여차례 거듭되는 동안 플레이는 36홀 규정이었는데 당시의 몇 코스들은 9, 12, 18홀이어서 옮겨가는 코스에 따라서 네 번, 세 번, 두 번을 라운드하다가 당시 세인트앤드류스 칸츄리코스가 18홀이었는데 1872년에 대회가 여기에 정착되면서 새로 생겨나는 칸츄리들이 18홀을 따라서 하다보니 그것이 정통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롱, 미들, 쇼트 세종류의 홀을 만들었을까? 혹시 인생에 비유해 말한다면 살다보면 매우 어려운 일, 보통 일, 쉬운 일 그렇게 상징적으로 정한 것은 아닐까. 허지만 롱,미들,쇼트의 용어는 한국과 일본에서만 통하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그런 표현이 없고 그냥 파를 기준으로 5파홀, 3파홀 이런 식으로 부르니 국제간의 팀플레이에서는 유의할 일이다. 한국, 일본식으로 표현하는 아이디어가 편리해 보인다.

롱이라면 431m 이상의 홀인데 5타로, 미들은 290-430m로 4타로, 쇼트는 229m이하거리로 3타로 경기를 마치는 것이 규정이어서, 규정대로 마쳤을 때를 이븐파(even par )로 72(혹은 71)타가 된다. 규정보다 많이 치는 타수가 소이 핸디갭이라는 숫자가 된다. 나의 경우 백점을 좋아하니까 핸디캡은 28이 된다. 규정타보다 한 타를 덜치고 끝낼 때 버디(birdie), 두 번을 덜 쳐서 들어갈 때 이글(eagle)이라 하고, 규정보다 세 타를 덜 쳐서 파5홀에 2타에 들어가면 알바트로스(albatros)라고 부른다. 모두가 새이름을 붙인 것이 특징인데, 새가 공을 물어다 넣는 것을 연상하게 된다. 알바트로스는 환상의 새이어서 이런 명칭들이 골프의 낭만을 느끼게 한다. 홀인원이라는 행운이 있다. 이것은 통상 130-200m 거리의 쇼트홀에서 한번 쳐서 홀에 쏙 들어가는 경우인데, 확률은 약 20000분의 일이어서 골퍼의 극소수만이 이 행운을 잡는다. 이러한 규정들은 모두 인위적으로 정한 규칙이다.

골프는 매우 과학적 운동이다. 우선 공을 예로 들면 공의 크기는 직경이 4.267 cm보다 커야 하는데, 홀의 크기가 10.8 cm로 정해져 있으니 너무 커도 곤란하다. 공표면에는 움푹 패인 홈(dimple)을 200-500개 가지고 있는데, 이 덕분에 비상이 가능해진다. 만약 그냥 둥글고 홈이 없다면 날아오른 공은 그냥 힘없이 떨어지게 된다. 골프가 발전하게 된 것은 1850년 값싸고 오래가는 공이 개발되면서 부터였다니 산업혁명과도 인연이 있을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면 성적도 향상되는 운동이니 골프에서 과학적 요소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요지음은 골프클럽의 소재가 첨단화되어서 장타와 훼어웨이 착지율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아무리 좋은 클럽과 기술의 숙달에도 마음이 불안해지면 샷은 흔들린다. 그린의 퍼팅에서 특히 그러한데 프로골퍼가 힘들고 선천적인 뱃장이 필요한 점도 이와 관계있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골프는 정신적 게임이라는 점이다. 과학과 정신이 결합되지 않으면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 두둑한 뱃장, 승부욕이 중요한 프로기질인 것이다. 세상만사에 정신이 빠지면 되는 일이 있을까만은 조그만 공을 예민하게 다루는 경기이기 때문에 정신집중이 매우 중요한 과학적 운동일 수 밖에 없다.


삶의 방식과 골프

골프가 신사적 운동이라고 하나 현실적으로 문제는 많다. 복잡한 용어를 아마츄어가 다 숙기지하기란 쉽지가 어려우나 기본조차 안되어 있는 골퍼가 많다. 한마디로 하면 골프기술은 배웠으나 정신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보편화되어버린 내기골프, 사람맞추기 골핑, 그린에서 남발되는 오케이, 남을 공을 툭 차주는 짓, 공을 찾다가 슬쩍 주머니의 공을 던져놓는 알까기행위, 자신과의 싸움이 아닌, 남과의 싸움으로 인식하는 무지한 행위들, 양심불량의 행위가 너무 많고 심지어는 조폭같은 인상의 사내들이 플레이를 멋대로 지연하는 모습은 참으로 안됐다. 신사운동과는 거리가 있는게 현실의 인상이다.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고 할까.

잘못 맞은 샷에는 수백가지의 핑계와 이유가 있는데, 이는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이 거짓말과 합리화, 핑계를 대며 사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골프는 절제와 자기와의 투쟁이어서 경기를 하다보면 자신의 결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가령 나의 경우와 같이 내기를 싫어한다던지, 내기를 시작하면 잘 맞던 공도 실수연속이 된다던지, 쉽게 긴장해서 망쳐버리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유업이 천직일 것 같다. 여러 형제들 속에서 부대끼며 자란 사람들은 경쟁을 즐기게 되는 경향이 있다. 미국 사회와 같이 자기도취성이 강한 문화와 골프는 같은 속성을 갖는 것이다. 골프에 매료된 사람들은 대개 부지런하다. 그러나 싱글을 치는 사람에게는 은행에서 대부를 안해준다는 말도 있어 이 수준이면 매니악이라고 할 수 있는 경지이다. 누구나 될 수도 없는 일이나 이 수준이면 곤란하다. 사업도 집안도 뒷전이 되기 때문이다.

보통 의사들은 주말 골퍼일 수밖에 없고 평일에 하더라도 새벽에 라운드하고는 목욕도 못한채 진료실로 달려가야 하는 운명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의사가 경제적 여유는 있더라도 좋은 직업은 아니라는 자조도 나온다.


골프의 결점

골프는 좋은 점도 많지만 내가 포기한 이유와 같은 현실적 단점도 많다. 가령 골퍼매니악을 남편을 둔 여자는 일요과부가 되어 우울증에 걸리기 십상이다. 이런 점에서 내친구 하나는 절대 골프를 안치기로 결심한 강한 의지의 표본인데, 그 이유가 설득력이 있다. 그의 선친께서는 오랫동안 싱글골퍼로 팔순에도 골프를 즐기셨는데, 그런 이유로 해서 아버지와 가족간의 대화결핍을 체험했다는 것이다. 그의 강한 의지로 보아 그는 평생 골핑을 안할 것으로 보인다. 요지음 젊은 층에서는 부부골퍼가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은 부부의 정신위생상 좋은 일인데 자녀와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 것이니 유념할 일이다. 또 다른 결점, 그것은 시간이 너무 소모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골프장은 미국같이 도심 속이나 가까운 곳에 있지를 않으니 교통체증으로 길에서 낭비하는 시간이 너무 많고, 애프터도 문제이다. 같이 식사정도로 끝나지 않고 어울려서 지나친 친교로 이어지다보니 하루 새벽부터 자정까지가 소모되니, 당연히 가족과는 담을 쌓게 된다. 젊은 골퍼들이 늘어나는 현상에서 염려되는 점은, 아빠가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좋으나 계속 이렇게 되면, 가뜩이나 애들 얼굴보기 어려운 상황인데 애비노릇은 어느 시간에 한다는 말인가. 한참 연구에 바뻐야 할 젊은 교수들이 휠드에서 종일 시간을 보낸다면, 어허 이 나라의 학문발전은 언제 이루어 지는 것일까. 연구도 해가며 체력단련을 즐기려면 잘치는 골퍼를 욕심내지 말고, 즐기는 골퍼가 되기를 권유한다.

하나 더, 문제가 있다면 회원권이 없는 골퍼의 경우 돈이 너무 든다는 결점이 있다. 요즘 시세로 일요일 하루 즐기기에 20만원이 들어가니, 등산을 하면 20만원을 버는 셈이다. 차원이 다른 일이니 비교할 바는 못되어도 어려운 시국에서 이 점은 분명한 결점이다.

골프의 조건

골프는 상류인생의 조건인가? 우리나라 골프의 역사가 귀족운동으로 시작하기는 했으나 오늘의 모습은 다양화되었다. 골프는 사업을 위한 필수요건이 되었고 요정마담이나 조폭까지도 즐기는 운동이니 상류사회의 전유물은 아니다. 그러나 골프를 즐기려면 건강, 돈, 시간 그리고 친구의 네박자가 어울려야 가능한 일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골핑을 즐길 수 있다면 팔자 중의 상팔자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인생에는 골프말고도 선택할 수 있는 취미활동은 무진히 많다.

첫째 위에 열거한 네박자가 갖추어져 있고, 둘째 바쁠 과제가 없거나 다른 취미가 없거나, 셋째 내가 골프를 해도 누가 뭐랄 사람이 없고, 자식들 걱정도 없다면, 이들 조건들을 갖춘 골프는 최상, 최적의 운동이겠다. 그러니 골프를 즐길 수 있다면 상류인생이 틀림없으렸다. 상류인생의 조건으로 하나만 붙인다면 정신적 수양이 꼭 붙어야 할 일이다. 인간의 온갖 활동이 도(道)가 아닌 것이 없으나 정신이 빠져 있다면 그건 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 성숙한 골프계의 미래를 위하여 소홀히 하고 있는 정신적 요소를 강화하여야만, 상류니 중류니 하는 신분의 문제를 떠난, 신사운동으로의 조건으로 다시 태어나야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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