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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칼럼

제목

신인류, 용의 세대(Dragon generation)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11.03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3787
내용
올해는 날씨가 무척 변덕스럽다. 장마도 아닌 데 벌써 일주일이 넘도록 비가 멎지를 않고 내린다. 오늘은 광복기념일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오늘은 근무했는데 올해부터는 쉬고 있다. 주 5일 근무제가 떠오르면서 우리네 생활이 변하고 나의 생활도 변한다. 휴일의 아침은 무거운 늦잠이기 십상이나 오늘은 빗속에서나마 편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는다.

거실에 나서니 마루 전체에 빨래들이 널려있다. 궂은 날씨와 빨래가 꼭 장마철 같다. 장마도 아닌 장마날씨, 신문기사에 의하면 엘니뇨때문이라는 설명인데, 고도 프라하도 홍수에 잠긴 모습이 사진에 실렸다. 아무래도 세상이 예전 같지 않을 모양이다.

소파에 앉으니 불쑥 내 나이가 올 해 몇인가 하는 생각에 흠칫 놀란다. 환갑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꾸만 부정하고 싶다. 바쁘게 살고 있는 날들, 나는 거기 어디쯤 어떤 모습으로 서있는 지 궁금해진다. 여러 모임들 속에서 나는 핵심이기도 하고 주변인이기도 하다. 한 주일의 날들이 그런 모임들로 채워져서 일과 후 다 쫓아다니기에 벅찬 나이가 되었다. 내가 주변인이 되어있는 모임들을 생각한다. 열심히 참여하고 있지 아니한 모임들이다. 열심히 나의 시간과 정력을 투자하지 않는 곳, 거기에서 나는 주변인이 되어 있다.

문득 주변으로만 맴도는 송아가 떠오른다. 송아는 고교 2학년이다. 그녀는 학교생활이 재미가 없다고 한다. 친구들에게 일본 록음악에 대하여 소개할 때만 신이 났다. 인기를 의식하면서 좋은 기분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교 시간들은 지루했다. 갑자기 굵어진 무 다리에 더 신경을 썼다. 어머니에게 예쁜 몸매를 만들기 위한 성형을 졸랐다. 우여곡절 끝에 먼저 정신과를 찾게 되었는데, 우울증과 식이장애가 의심된다는 진단 때문이었다. 대학은 가고싶지만 성적을 위해 아둥바둥하기는 싫었다. 곱고 동그란 얼굴에 애교머리를 살짝 드리운 걸 보면 외모에 꽤나 신경을 쓰고 있는 눈치가 보였다. 숙녀처럼 요염기가 흘렀다.

송아는 주변인이다. 또래에 섞여서도 외롭다고 했다. 상당히 오래 전부터였지만 이유는 모르겠단다. 밖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지난 겨울방학에는 집에만 들어박혀 록음악만 들으면서 마구 먹어댔고, 한달 동안 자그마치 10kg이나 늘면서 다리가 굵어졌다. 그래서 남들의 관심을 얻는 방법으로 외모에 보다 신경을 썼다.
아닌게 아니라 송아의 다리는 조선무였고 발도 작았다. 상반신은 예쁜데 균형이 안 맞는 것이다. 몸은 주변으로 도는데 마음은 핵심으로 가기를 원했다. 그녀의 가정은 자수성가형이다. 한동안 어머니는 맞벌이를 했다고 한다. 바쁘다보니 아이는 외할머니가 길렀고, 그후 어머니 품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둘 사이는 서먹했다.

일년 후에 여동생이 태어났다. 정들만 하자 다시 버려진 것이다. 철이 들 무렵부터 그것은 계속되었고, 중학교에 들어와서는 아예 공부에는 흥미를 잃고 말았다. 그녀가 주변인이 된 건 바로 어려서부터 버려진 느낌 때문이었다.

어느 나라에나 주변인들은 있다. 한국에서 수년간 일하고 있는 영국인 친구에 의하면 그가 부산의 외국인교회에서 수년간 만난 외국인들을 보면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신경질적인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대부분 자기나라에서도 주변으로 돌던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같은 기독교문화권이지만 그들의 선조와는 다른 문화권속에서 성장하고 있음에는 사실이다. 포스트모던 정신, 저들의 기본인 기독교 정신을 일탈하고 있다. 마치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처럼.

컴퓨터문화가 아이들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어느 정신과의사의 보고에 의하면 병원을 찾는 거의 반 이상의 학생들이 '외톨이 인생'으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신세대가 나올 때마다 X 혹은 W세대 같은 신인류의 지칭어들이 등장한다. 어린 외톨이 인생들이 성장하여 어떤 특성들을 지닌 인간이 될 것인가를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선진국의 현실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국의 현대적 특성 가운 데 하나가 나르시즘 문화와 경계선 인간들의 출현이다. 경계선인간이란 주변인의 다른 이름이다. 자본주의가 출산한 기형아들인 셈이다. 외톨이는 이기적이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다. 정신적 미숙아이기 때문이다. 자기라는 알을 깨치고 나오지 않은 상태여서 인간관계가 지속적이 못하고 변덕스럽다.

외톨이는 샤르뜨르의 "존재와 무"에서 주장되는 인간상이다. 정신분열형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은둔과 소외가 특징인 사람들이다. 현재까지는 일부의 인류가 그러한 모습이었으나, 어린이의 절반 가까이가 컴문화의 외톨이로 성장한다면 앞으로 인류는 샤르뜨르의 인간군들이 대표인류가 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이것은 인류가 생긴 이래 가장 심각한 변화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기존 사회가 선호하던 가치관들이 전면 수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삼라만상은 언제나 변하고 있다. 이는 싯달타가 깨우치고 중생에게 가르친 메시지이다. 우주의 한 생물인 인류도 변한다. 당연한 일이나 문제는 너무 빨리 변하는 것에 있다. 빨라도 너무 빠르다. 우리는 고향도 잃고 학창시절이란 울타리도 허물어지고 말았다. 낡은 건물은 사라지고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섰다. 새 부대에 새 술을 담는 것은 원칙이겠으나 밀려나는 느낌은 허전하다.

장마도 일정 계절이 되어야 찾아와 주던 시대에 성장했던 우리다. 그런 정형화된 사고로 살아왔으면서 이제 장마철이 따로 없어진 날들, 불확실성 시대의 어느 날, 폭우가 쏟아져 내리는 창가에 서서 나이에 대한 생각을 수정하고자 한다. 가까이 다가온 환갑나이 60. 신인류의 시대에는 정년이 75세라는데, 나의 환갑도 이제 15 년을 더하여 뒤로 물러나도록 설정한다.

그리하여 소천을 앞두면서도 그 날을 두려워 않고 현실의 일을 사랑하며, 삶을 가꾸고자 소망하는 세대에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 D(Dragon, 龍)세대라고. 신인류만 변하는 게 아니라 노년의 세대들도 세월따라 변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용의 세대는 젊은이들에게 의존하지 아니하고, 젊은이들의 보좌관이 되어서 힘찬 미래를 가꾸어 갈 새로운 자원이 되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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