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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칼럼

제목

손가락이 늙었어요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2.18
첨부파일0
추천수
3
조회수
7359
내용
손가락이 늙었어요

김 종 길

지문으로 인식하는 방범 세트 박스에 엄지손가락 끝마디를 밀어 넣었다.
“다시 한 번 시도해 주세요.”
두 번, 세 번을 시도하여도 앵무새 같이 되풀이하는 멍텅구리 박스. 퇴근 시간이 한참이나 지연되면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수십 차례를 반복하다가 별 수 없이 방범 업체에 응급 전화를 냈다.

업체의 직원이 달려와 이리 저리 기계를 점검을 하더니 엄지로 등록된 지문을 검지로 변경하자고 했다. 그리곤 손바닥을 보여 달란다. 웬 손바닥 점검? 손금이라도 볼 참인가, 저항감을 느낀다. 젊은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조심스러운 말투다.
“피로하셔서 그러니까요, 손가락을 입에 넣고 호호 여러 번 불고서 시도해 보세요.”
과연 시킨 대로 하자 기계는 정상적인 반응을 보였다. 퇴근을 하며 손가락 끝마디를 들여다 보니 거기에는 마치 목욕탕에 오래 있으면 손가락들이 쪼글쪼글해 지듯 세로주름이 잡혔다. 젊은이가 달아주던 사족 같은 한 마디, 나이가 들면 주름이 생겨서 인식에 오류가 일어난다는 말, 쉽게 말해서 손가락에 노화의 증세가 보인다는 말이 아닌가. 이놈의 기계가 노인 손가락이라고 차별대우를 하며 업신여기다니, 화가 치밀었다. 머리는 부정하는데 몸은 인생의 겨울을 받아들인다는 신호, 바깥 공기가 더욱 차갑게 느껴진다.

다음날 밝은 아침 햇살에 손가락을 들여다보니 끝마디 세로주름이 엊저녁보다는 훨씬 적다. 원래 여윈 몸매에 피하 지방이 적은 탓에다 물마시기를 게을리 하였으니 오후에 탈수가 되면서 말단 손가락이 체내 수분 변화에 예민한 결과를 나타낸 현상일 것이다. 아내와 딸의 손가락은 어떤지 궁금하여 손을 내밀어 보라고 했다. 유심히 들여다보니, 저들의 손가락은 탱탱하다. 물기 마른 손가락이 나의 현 주소, 늦가을 말라가는 옥수수 대궁이 아닌가.

시골 할아버지의 전형적 모습이 떠오른다. 서리 내린 머리칼, 물기도 마르고 부스스한 머리칼, 햇볕에 그을려 쪼글쪼글하고 새까만 얼굴, 이마에는 굵은 계급장. 나도 주름은 있지만 새카만 얼굴도 아니고 노인의 정의 65세가 멀었다고, 할아버지는 아니라고 우겨 보지만 헛물이다. 지문 인식기가 거부하는 데 어쩌는가. 머리칼이야 염색으로 위장하지만 손가락 주름은 도리가 없다.

생각해 보니 몸의 변화는 손가락만이 아니다. 남자 환갑이 되면 절반의 인구에서 전립선이 부실해져 오줌발이 약해진다는 통계가 있다. 나의 물주는 기계도 얼마 전부터 힘이 시원찮았다. 힘차던 폭포 소리가 졸졸 리듬으로 바뀌고 있다. 걱정 끝에 어느 날 물을 많이 마셨더니 물소리가 힘차게 살아나기에 ‘역시 물은 물이 살리는구나.’ 새삼 느낀다.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물만 마셔도 상당 기간을 생존하는 인체의 생리, 몸의 70%를 구성하는 필수 영양소가 아닌가. 그 위력을 잊고 지내니까 손가락 끝마디에 건널목 빨간불을 지핀 것이다. ‘땡땡땡, 노화가 오고 있네요.’ 나는 정지선에서 늙음에 대하여 심각한 고민에 잠긴다.

지하철에서 가끔 좌석을 양보 받는 일이 생각난다. 굳이 사양을 하는데 굳이 뭐 그럴 건 무엇인가, 좌석에 앉으면 편할 일이다. 그래도 나는 아직 젊다는 부정 심리, 얼굴은 중늙은이로 보여도 ‘나 서 있을 힘이 있다네!’ 주장한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 身老心不老’고 한 선조들의 마음. 그런데 나는 정말 할아버지다, 실제로 이미 두 명의 외손을 두었으니까. 다만 실감하지 못하는 것은 외손들이 바다 건너 멀리 있어 사진으로만 보고 살기에 감각적으로 무뎌졌을 뿐이다.

부정 심리는 인생 도처에서 보인다. ‘당신, 암에 걸렸오.’ 선고를 받으면 공통된 반응이 ‘그럴 리가...오진일거야.’ 하는 오리발 심리가 상정이다. 부정은 길고 강인하게 거부할수록 암을 회복하는 확률이 높다고 한다. 쉽게 받아드림은 쉽게 포기한다는 뜻도 되기에 젊음을 그리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늙음을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겠나.
늙어지는 다른 증거, ‘인생이 나만 잘 살자고 사는 게 아니라’ 는 공동체 깨달음이 왔다. 강원도의 한 노인이 ‘혼자 잘 살믄 무슨 재민겨.’ 라고 책을 써냈다. 공감이 가는 까닭은 나도 바로 그 노인과 같은 세월을 살았다는 뜻이려니. 그래서인지 삶의 행위를 바라보는 눈이 보다 긍정적이 되었다. 그러자 부끄러움도 늘었다. 오랜 세월 만나는 환자분들에게 더 빨리 회복시켜드리지 못하여 미안하고, 미완의 장기 질환자들에게는 보다 좋은 치료법을 알지 못하는 의학이 내 잘못인양 부끄럽다. 의사가 된 것도 부끄러운 마음, 자랑스러웠던 지식조차 너무 초라한 느낌이 된다. 전문직 인생으로 육신적 괴로움은 덜하였으니, 거친 삶의 바닷물은 덜 먹은 셈, 내 인생에 물은 부족하였다. 예전에는 흘려서 들었던 역술인의 말, ‘2월생으로 봄이 오는 데 물이 부족하다’고. 바로 운명을 들킨 거 같아 심사가 얄궂다. 물이 부족한 운명이라더니 바로 손가락 마디가 이제야 증명을 해주고 있다.

내 사전에 은퇴는 없다고 말하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직은 예전보다 피로도 덜 느끼고 활동적이다. 십여 년 전에 미국 여행 중 만난 동창생이 50대에 은퇴를 준비한다던 말에 놀랬었다. 늙어도 늙음을 인지하지 아니하고 젊게 살면 ‘아직은 젊은이’라고 생각한다, 강한 부정심리가 남 보기에 주책이라 할지라도. 심리적 현실, 거기에서 노화를 인식하면 갑자기 늙기 시작한다. 결혼의 적령기는 결혼하고픈 마음이 생긴 때이듯 ‘늙었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노인이 된다. 그런데 순리를 거부해 보아도 약간의 시차일 뿐, 아무리 차를 잘 관리하여도 연식이 낡으면 값이 안 나가는 게 중고차 시장의 생리, 현실이다.

나의 또래들이 거의 은퇴 생활을 즐기고 있는데, 나는 일거리에 집착하며 복도 지지리 없는 나날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부끄러움을 알고 감사도 알게 되었으니 벌 받는 기분으로 물이나 마셔야지, ‘물 많이 못 먹은 인생’이었으니 진짜로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 다만 요령 있게 ‘자주, 천천히, 조금씩’ 마시고자 한다.

노자의 말씀, ‘물같이 살라’는 금과옥조에 하나 더하여, 물을 마시며 ‘물과 함께 살아야’ 함을 새롭게 느낀다. 순명 그리고 노력 하나 더하여 여생을 지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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