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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제목

가을 이사 (홀로서기를 위하여)

작성자
백발마녀
작성일
2006.11.09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1678
내용
저번 달부터 혼자 살 집을 알아보러 다닌 것이 얼마전에야 계약을 끝내고 다음주에 이삿날을 받았다. 분가에 대한 욕심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때로는 여자라는 이유로, 지금은 실업자라는 이유로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하던 것을 이사운이 왔을 때 하는 것이 좋겠다싶어 좀 과감해지기로 했다.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있으니.. 별장같이 너른 집 거실에서 매일 수시로 변하는 바다그림들에 취해 (특히 요즘은 맑푸른 하늘과 뭉실뭉실한 구름, 반짝이는 수면이 변화하는 모습이 눈부시다.) 커피 한잔 마시고서 아늑한 소파에서 뒹구는 일은 포기해야 한다. 분에 맞지 않게 자동차를 끌고다니던 일도 정리해야 한다. ( 구닥다리지만 속썩이는 일없이 튼실하게 말잘듣던 10년너머 정든 애마를 헐값에 넘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저리다.) 그리고... 짐스럽게 끌고 다니던 책들. 거금들여 사모은 두툼한 인문사회과학 원서 전질류를 비롯한 많은 책들이 먼지만 둘러쓰고 겉장한번 들춰본일 없이 깨끗이 묵혀두었다가 이젠 사람이나 물건이나 폐기처분을 기다리는 모양이 되었다. 도서관에 기증하겠다해도 요즘 사람들이 새책만 찾으니 두껍고 전문적인 책은 짐된다고 사양한다. 여러박스나 되는 무거운 책짐은 버리기도 수월찮다. 귀여운 팬더마우스도 밥 줄 사람이 없으니 가까운 애완동물센타에 부모형제 갓난새끼 포함해서 살림집채 무료로 줘버릴 작정이다. 발소리만 나도 달려나와 손을 핥아대는 어미와 새끼들이 보고싶을 것이다. 새로 무언가를 시작하는 일은 조금은 두렵지만 짜릿한 흥분도 준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계획표대로 살아보리라. 흠흠, 오빠네는 은근히 집에서 계속 밥하면서 공부하라고 부추기지만, 자기자신에 대한 환상은 더이상 갖지 않기로 했다. (잠꾸러기 게으름뱅이에게 주경야독의 꿈을 꾸다니요.) 홀로서기의 전제조건이라면, 세상에 대한 맹목적인 환상은 일찍 깰수록 좋다는 것이 내생각이다.. 세상의 모든 비극은 결국 환상에 대한 환멸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던가. 결혼이나 자식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서로 조금이라도 덕보자고 결혼하다보니 불평불만이 쌓이고 고통에 이르는 것은 결혼에 대한 서로의 환상이 불러일으킨 결론이다. 요즘은 초등학교 4학년인 여자조카에게서 많이 배운다. 의자에 앉으면 몇시간이고 꿈쩍않는 그애에게 들으니, '세상이 따분하기 때문에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벌써 자력으로 그런 사실을 깨쳤으니 신통하기도 하지. 아침저녁으로 영어공부, 한자공부, 컴퓨터 학습, 검도, 피아노 그림, 글짓기, 책읽기..(그애가 읽어제치는 책은 실로 방대하다.) 무시라.~ 으잉? ~ 삐끄덕( 줄줄이 점심먹으러 오는 소리) 초등1년생 남자조카가 학교갔다와서 배고프다 소리지른다. 오빠까지~ 에고고오~ 빨랑 밥차려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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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쎄라

    두통때문에..

    18 년전
  • 쎄라

    두통때문에..

    18 년전
  • 김종길

    올드미쓰가 어느날 과장법으로 백발마녀로 변신이 되었나요? 작명에서 자학성이 보입니다그려. 둘이 살아도 괴롭고 혼자 살아도 괴롭고 분명한 건 어느 길을 가나 '심리적 독립'은 필수적이라는 거지요. 마음 속으로 홀로서기가 아니되면 공간적 홀로서기는 실패하니까요. 그리고 요즘엔 돈이 없으면 그런건 다 꿈이지요. 어쨋거나 요즘 살기는 좋아졌어요. 먼저 그걸 잊지 맙시다.

    18 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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