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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칼럼

제목

영광 그 속내의 심리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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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0
조회수
2934
내용
북미를 여행할 때 그 나라의 도로변에 선 큰 나무들이 부러웠다. 우리의 나무들은 수미터의 단신들인데 거기에는 수십미터의 긴 장다리들이었다. 무엇이던지 크고 우람한 나라, 나는 그중에서도 나무들이 부러웠다. 그러면서 그 높은 나무들 위로 수맥을 따라 오르내리고 있을 물방울들의 여행이 경이롭게 생각되었다. 우리의 축구가 항상 작은 나무였다면 세계 축구는 언제나 거목이었다. 월드컵 경기에서의 놀라운 슈팅, 기묘한 장면들을 볼 때마다 우리 축구는 언제나 저런 나무로 크나, 아니 그것은 영원히 오지 못할 꿈일 뿐이라고 웃고 말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우리 모두는 놀랍고도 벅찬 4강의 거목을 키워냈다.그 놀라움에 온 국민은 환호하고, 꿈너머(8강) 꿈(4강)을 이룬 태극전사들을 칭송한다. 그 주인공으로 진가를 발휘한 위대한 지도자 거스 히딩크의 공적에 대하여 더할 수 없는 최대의 명예를 드리고 찬양하였다. 영웅에 굶주려 왔던 우리에게 그는 감격스러운 위대한 지도자의 표상을 보여 주었다.

높은 나무를 살려주는 물방울들의 경이러운 여행에 대한 나의 경이는, 바로 우리 태극전사들이 어떻게 하여 전대미문의 극적 승리를 이룰 수 있었나하는 비결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나무의 수맥을 타고 오르는 원리가 간단한 삼투압의 원리라면 그 위대한 승리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여러 의견들 중에서 나는 다음의 것들을 중요한 것으로 뽑고싶다. 첫째, 히딩크 감독의 우수한 과학적 전략분석과 좋은 훈련 둘째, 기초체력 양성과 학력, 지연 등 고질적 병폐가 배제된 실력 위주의 선수선발 셋째, 감독과 선수사이의 고도의 심리전이다. 그외에도 여러 요인들이 있을 것이다.

골세레머니와 토론 장면에서 나는 인상적인 장면들을 보았다. 심리전에 관하여, 아마도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 흔히 있는 갈등의 꼬투리가 (무의식적으로) 노출되는 현상을 본 것이다. 안정환의 쇼트트랙 골세레머니는 누구나 이해하는 국민심리의 승화, 젊잖은 복수였다. 폴튜갈전에서 박지성 선수가 골을 넣고는 어딘가로 힘차게 달려가는 모습, 그리고는 히딩크의 가슴에 안기는 열정적 포옹이었다. 신문의 한 컬럼은 "골게터의 질주" -" 얼마나 아름다운 사제지정인가."라고 썼다. 공감가는 글이었으나 뭔가 집히지 않는, 어린이의 힘찬 몸짓 이외의 어떤 느낌이 떨쳐지지 않았다. 감독이 발굴한 장학생 중의 하나가 그였다는 기사로 의문이 풀리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뭔가 느낌이 남았다. 이 장면은 첫 번째의 승리전에서 일어난 골세레머니와 관계가 있었다, 전반전에 회심의 첫 골을 얻자 기쁨에 찬 선수들이 벤치로 일제히 달려갔고 히딩크도 팔을 벌리고 뛰어나왔으나, 선수들은 그를 무시하고 곁에 있던 박항서 코치를 얼싸 안았다. 머쓱한 히딩크는 등을 돌이고 걸어 들어갔다. 이 어색한 분위기는 일주일후 폴튜갈전에서 첫 골을 넣은 박지성선수가 히딩크에게로 달려가 안기므로써 해결된다. 말하자면 선수들과 감독간의 불똥 튀는 갈등전이 있어왔고, 그것이 무의식적으로 노출되었고, 16강이 확정되는 순간, (반쯤 의도적인?)박지성의 효성적 포옹으로 타결되는 것이 아닐까. 그저 단순한 사제지정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7월이 되고 승리를 자축하는 토론장면에서 또 하나 흥미러운 점은 주장 홍명보가 감독을 호칭할 때, "감독"이라고 하는 장면이었다. 이 호칭은 여러번 사용되었다. 코치 정해성의 입에서는 깍듯이 '감독님" 이 호칭되었다. 젊은 선수의 자존심과 관계된 결과일까 하는 의문이 남았다.

이런 의문은 히딩크의 전략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를 다루는 심리전에서 선수들은 마음을 다치고 더 독이 올라서 열심히 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임의 직전까지 베스트 일레븐을 밝히지 않는 심리전이 있었다. 이것은 심한 라이벌의식을 부추기어 사력을 다하는 경쟁심을 유발한다. 물론 이 방식은 일부 감독들의 평이한 전략 중의 하나이기도 하겠는데, 당하는 선수 입장에서는 심각하고도 유효한 전략일 것이다.

히딩크가 네델란드의 프로 축구팀 "PSV 아인트호벤"을 맡고 있을 때, 유명한 스타플레이어 호마리우스가 있었다. 그는 감독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선수였다. 그는 몇번 주의를 받았고, 시즌 첫경기에서 제외되었다. 두 번째 경기에서도 그는 벤치를 지키는 신세였다. 세 번째 경기를 앞두고 전 선수가 모인 자리에서 감독은 리스트에 그를 올렸지만 아무 언급도 하지 않고 나가버렸다. 세 번째 경기에서 그는 해트트릭을 기록하였다. 감독의 리더쉽은 은밀하게 선수에게 독기를 올리고 혼자 승화하도록 조율한다. 능란한 여우작전이면서 사랑의 부성적 배려가 어우러진 것이다.

홍명보를 위시한 소위 유명세가 있는 선수들은 선발 초반에서 호마리우스가 당하는 유사한 심리전에서 넠아웃 당한다. 고통을 소화한 선수들은 살아남아서 승리를 자축할 수 있었다. 유명한 여러 선수들이 밀려났다.

히딩크는 만만한 감독이 아니다. 그는 감독직을 수락할 때, 두가지 조건을 제시하였다. 첫째, 선수선발과 훈련에 일체 간섭하지 말 것 둘째, 월드컵대회가 끝날 때까지의 임기 보장이었다. 칼자루를 쥔 감독에게 항명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월드컵 하나 뿐이었다. 사실 A-매치 중간성적(42.8%)은 차범근 감독(56.8%)보다 못하였고, 체코와 프랑스에게는 5:0으로 패하여 일명 오대영 감독으로 호칭되었다. 말하자면 그는 16강전 하나의 목표에만 집중투자를 하였다. 목표에 전념하는 집중력이란 중간 과정에서 오해와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우직한 고집이 필요했다.

한국축구는 세번 외국인 감독을 맞이하였다. 독일의 크레머, 러시아의 비쇼베츠 그리고 히딩크였다. 이제 그들은 떠났고, 우리 스스로가 이끌어야 할 한국축구가 남았다. 비쇼베츠는 말했다, "복사품은 언제나 오리지날을 따를 수 없다." 고. 히딩크는 용의 눈을 그려넣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의 고수였고 밑그림은 우리선수들이 그렸다. 한국축구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잘 이끌어 나가야 할 숙제가 남은 것이다.

영광을 거두게 한 배경, 사회적 심리를 한번 돌아보면 거기 한 무리의 "붉은 악마들"을 이해하여야 한다. 이들의 출현은 우리에게 정체성의 자신감을 회복시켰다. 붉은 악마의 정체성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레드 콤프렉스의 해소와 이념의 변화 때문이다. 붉은 악마의 존재는 이념적 의미에서 보다 중요한데, 이들을 구성하는 20대가 "신보수'의 색깔을 지닌 계층이라는 사실이다. 이들 W(월드컵)-세대는 공짜도 싫고 압제도 싫어한다. 이들의 북한 정권에 대한 통찰력은 기특하다. 김정일은 족벌의 권력을 아무 노력없이 승계한 자일 뿐이며 그들의 관심은 압제받는 이북백성들이지 정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깍쟁이면서도 남을 헤아릴 줄 아는 꽃띠 젊은이들이다. 그들의 영악스럽고도 건전한 나르씨즘, 자부심이 듬직하다. 신구세대가 어울려서 이룬 4강이었고 앞으로도 꽃미남 스타플레이어들과 강력한 팀웍의 파워사커가 배합된 한국축구의 미래가 기대된다. 7월 K-리그 개막전 운동장들이 응원진으로 만석이 된 장면이 희망을 증명한다. 그 함성속에서 우리는 서양문명에 대한 반세기 열등감을 해소한다. 이제 자신감을 부양한다.

좋은 감독을 기용하는 고액과외(145만불)가 기본이었다면, 머리 좋은 선수들은 열심히 공부를 했고, 엄마들(국민)은 열심히 뒷바라지하여 뜨거운 교육열풍의 결과로 월드컵이라는 수능시험에 고득점을 올리는 데 성공하였다.

결과가 좋아 다행이었지만, 선수가 공부하는 데 합격하여 인정(사랑)받고져 하는 욕동이 없었다면, 일년반만에 4강의 큰 나무는 자랄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랑을 먹고져하는 건전한 경쟁심(兄弟競爭)이 뛰게 하는 축구는 삼투압으로 물방울을 높은 나무로 올리는 이치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브라질의 호나우두가 하늘높이 들어올린 월드컵이 황금페니스형상으로 보이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높은 나무, 거대한 페니스, 명예와 금력을 함께주는 그 거대한 물건에 향하는 사나이들의 필사적 질주는 에디프스컴프렉스에서 극복하고 승리하는 영웅의 상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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