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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칼럼

제목

구로베의 태양; 북알프스에 숨은 영웅의 이야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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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0
조회수
3711
내용
구로베의 태양


캄캄해진 구로베 대협곡에서 덜커덩거리는 도로꼬 열차를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고지대의 밤이 토해내는 냉기를 느끼며 나는 욕망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였다. 영산(靈山) 다떼야마(立山)의 깊은 질속으로 들어갔다가 이제 퇴진하는 막바지라 뒷끝 피로감이 몰려오면서 깜빡 단잠에 취했다.

나는 건너편 협곡의 깍아지른 가파른 산비탈, 맨손의 등산만으로도 어려운 지형에 이 골짜기 사이로 댐을 쌓아올려서 해발 2,000미터에다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미친 사나이였다. 해안 평야에서 산 중턱으로 철로를 깔고 목재와 시멘트를 올려다가 착착 벽을 쌓아 올려 나갔다. 중간쯤 쌓여가던 댐이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분노하는 물길에 수몰되면서 나는 놀라 허덕이면서 꿈을 깨었다.

깜빡 몇 시간 전에 가이드가 들려주던 구로베 댐의 역사 얘기에 걸린 최면의 토끼잠이었다. 이 산악지대에 댐을 건설해준 사람 덕분에 우리 일행은 편하게 도로꼬 열차를 타고 손쉬운 협곡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나까무라 구하시, 공사기간 ‘7년 동안 웃지 않은 사나이’ 였다.

구로베는 일본 북알프스에 있는 골짜기다. 북알프스는 지도상으로 혼슈(本州) 서쪽 끝에 있는 나고야시(名古屋市)에서 정북쪽에 위치하는 해발 3000 미터 이상의 산악 지대이다. 우리나라의 포항에서 동해 바다로 직선을 그으면 맞닿는 해안에 도야마현(富山縣)이 있다. 그 뒤쪽의 높은 산들이 그것이다. 해안에는 풍요한 평야들이 펼쳐 있고 그 배경으로 병풍같이 펼쳐진 산들이 아름다운데 거기 골짜기들 중의 하나가 구로베 협곡이다. 이 험한 지형에 댐을 짓는 것은 구상부터가 난감한 일이었다. 허지만 그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 역사적 사명이 있었다. 그 사명은 우리의 아픈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한반도에서는 한국동란이 일어나면서 미국은 전장에 가까운 일본의 서쪽 지방에 전진기지를 구축하였다. 군사적 전진기지가 되는 관서지방은 공장들이 들어서고 막대한 전력이 필요했다. 당시 동경을 중심으로 하는 관동지역은 도꾜전력(東京電力)이, 관서지방은 간사이전력(關西電力)이 중심이었는데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는 절대 부족이었다. 원거리의 동경전력을 이용하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둘 다 사유회사였으므로 경쟁관계였고 자기 지방의 미래를 위해서는 나름의 큰 발전시설이 필요했다. 나까무라는 급경사를 이용한 수력발전을 구상하였다. 그 적지가 구루베 협곡이었다.

나까무라는 전국의 등산전문가 80명을 동원하여 기초작업을 마치고 인부모집 광고를 냈다. 공사장은 동계 6개월은 설국(雪國)이 되어 하산도 할 수 없는 난공사였다. 일본인 인부들은 영산을 파헤치는 무엄한, 미친 공사에 아무도 지원하려 하지 않았다. 다행히 전쟁터에서 도피해온 남한과 북한의 노동력이 풍부하였다. 한국인들이 없었다면 이 공사는 시작부터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고임금 작전으로 유혹하는 공사장에 헐벗고 굶주리는 불법입국자들인 한국 피난민들로서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들은 용감히 도전했고 일본인들도 덩달아 동참하였다. 당시 한반도의 남북의 대립으로 이곳 공사판에서도 그들은 적대관계였다. 그래서 남북의 인부들은 일본인들과 섞여서 다른 팀으로 구성되어 산맥의 서로 반대편에서 굴파기 작업을 계속하였다. 어느 겨울, 남한 인부들 쪽의 공사장에서 수맥을 터뜨리는 바람에 171명의 인부들이 굴속에서 수몰되고 동사하는 비극이 발생하였다. 완성된 댐의 한 편에는 그들 영령들을 추모하는 동상과 명패가 있었다. 그들의 희생과 계속되는 용감한 도전으로 일본 최대의 댐 공사는 7년(1956-63)만에 예정대로 마쳐졌다. 댐 높이 186미터, 길이 492미터, 최대 34만 KW를 생산한다. 자연경관 훼손을 막고 겨울 동안 눈을 피하기 위해서 모든 발전시설은 지하에 설치되었다.

이 댐의 완성으로 관서지방의 공업은 급속히 성장하여 일본의 성장에 큰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오늘날 오오사까 공업단지가 그 덕으로 번성하였고 관서지방의 일년 예산이 대국 카나다의 일년 예산과 같다고 하니 주인공 나까무라는 진정 일본의 영웅이었다. 그의 일생은 후일 <구루베의 태양>이라는 영화로 제작되었고, 우리나라에는 <어둠 속의 빛이 보일 때>로 소개되었다. 그 영광의 그늘에는 경상도와 제주도에서 건너간 한국인들의 희생이 있었고 회사는 그들의 후손들에게 후한 배려를 하였다고 하는데 덕분에 후손들은 도요마 지역의 부동산 투자로 현재도 알부자들이 많다는 소식이다. 선친의 덕을 보는 불행 중 다행인 희소식이었다.

그들이 대협곡에 댐 건설을 마쳤을 때 한반도는 혁명정권의 어려운 살림에 허덕이고 있었다. 나는 절로 탄식이 나왔고 알 수 없는 배아픔이 일어났다. 같은 시간대에 나는 중학생이었다. 우리와 그들은 지금 어떻게 다르게 살고 있는가 하는 문답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불행한 과거이지만 저들의 부흥은 우리의 음덕(陰德)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한 인간이 일으키는 욕망이 이토록 후손들에게 태양 같은 힘이 되어 줄 수도 있고 임진왜란을 일으킨 히데요시나 태평양 전쟁의 도오죠 같이 패망의 길로 안내할 수도 있다. 한 사나이의 광기어린 욕망이 어떤 흐름으로 요리 되는가, 역사는 거기에 고개 숙여 따를진대, 우리나라에도 <유신혁명의 사나이>나 <철의 사나이>가 있지 않는가, 그들을 욕하여 파묻지 말고 태양으로 빛나게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하였다.(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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