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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칼럼

제목

밥벌레가 나비되는 날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11.03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795
내용
삼십대의 여류시인이 쓴『지하철에서』라는 제목의 시.

"나는 보았다
밥벌레들이 순대에 들어가는 것을"

매우 짧은 패러디 넘치는 글이다. 식인종 씨리즈 우스개를 연상시키는 이 글에서 읽는 이들은 짜릿한 야유를 느낄 것이다. 아니 우리들, 이 우아한 영장류의 인간들을 밥벌레라고 부르다니 말도 안된다. 공부 못하는 학생을 쥐어박으며 엄마가 하는 말이 "이그, 이 식충아" 한다. 밥벌레의 한자어가 식충(食蟲)이다.

우리집 막내가 고등학생 때인데, 친구의 집에 아주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그 애는 밥벌레 소리를 들을 정도로 시원찮은 공부를 하는데, 얼마 전 아버지의 생일날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버지가 저녁 밥상을 받고 앉아서 갑자기 훌쩍거리며 울더라는 것이다. 뚱뚱한 그 집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듣자니 우습기도 한데, 이상스럽게도 이야기를 듣는 내 눈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지를 않는가. 슬그머니 아내를 쳐다보니 아내의 눈물에도 눈물이 비쳐 보이는 것이었다. 사연인즉 이랬다.

항상 철없이 굴던 아들애가 아버지 생일에, "공부도 안하고 걱정을 끼쳐서 미안하다. 정신을 차리겠으니 걱정마시라. 생일을 축하한다."는 요지의 편지를 주었다는 것이다. 저녁상을 받고, 편지를 읽은 아버지는 밥상 앞에서 흑흑거리며 울더란다. 뭐, 대단치도 않은 사건에, 우리 부부의 눈물은 또 웬 것인가? 참 어처구니없는 시시한 일인 거 같아 한참을 생각하였다.

아내의 말이 "부모는 다 바보인가봐요." 그렇구나.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고 요즈음 아이들이 얼마나 부모들과 대화가 없이 살아가면 이만한 일에 부모들이 눈물이 난다는 말인가. 아버지는 아이들 얼굴 보기가 어려운 게 요즈음의 살림살이다.

학교와 학원의 포로가 된 아이들, 눈에 안 보이게 들볶이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조차 없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울어주는 부모가 있는 아이는 행복한 것이다. 있어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집도 많다. 학교를 빼 먹고 가출하고 부모 속을 썩이는 밥벌레 같은 아이들도 많은 현실.

생각해 보자. 생일 축하 편지 한 장에 울어 버리는게, "바보 같은 부모의 마음" 이라는 걸. 이 아버지의 눈물을 이해하는 밥벌레 같은 아이라면 아름다운 나비로 변신하는 날이 멀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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